이데아와 유-종을 논하다 – 필레보스 2강(정암학당)

드디어 이데아가 나왔다.

12d

서로 닮지조차 않은 온갖 형태

우리는 방탕한 사람이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는가 하면 절제있는 사람도 바로 그 절제함에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네

분별있는 사람도 바로 그 분별함에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네

즐거움의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논한 부분

현대에 와 공리주의에서 벤담은 양적인 공리주의를 주장한데 비하여 존 스튜어트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논한 것과 유사한 논쟁. 존 스튜어트 밀은 즐거움을 양적으로 구별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논함

13b

우리가 주장하듯이 즐거운 것들의 대부분은 나쁜 것들이고 그것들의 일부가 좋은 것들이네

arete(덕)으로부터의 즐거움과 kakia(악덕)으로부터의 즐거움 중 무엇이 클까. 플라톤은 악덕으로부터의 즐거움이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더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해도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강력하게 느끼려 하는 쾌락주의는 어쩌면 비루한 현실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래 전, 핸드폰 요금이 300만원 가까이 나와서 자살한 소년의 사건을 했었을 때, 어쩌면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고통이 그 소년을 핸드폰에 탐닉하게, 그 비루한 컨텐츠로부터 즐거움을 느끼게 했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kakia로부터의 즐거움.

13d

도대체 무엇이 좋은 것인가

좋은 것의 기준은 혼의 상태를 의미한다

14a

닮지 않은 여러 즐거움이 있고 차이가 있는 여러 지식이 있다고 해 두죠

프로타르코스가 어이없게도 (소크라테스의 윽박지름에) 쉽게 자신의 견해를 포기한다. (한숨)

14b

지금 우리는 내가 제시하는 것이 이기도록 하려고, 혹은 자네가 제시하는 것이 이기도록 하려고 승리욕에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네 . 오히려 우리 둘은 가장 참된 것을 위해 싸워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의 논쟁이 소피스트의 논쟁술(eristike)와는 다름을 지적한다.

14c

모든 사람에게 난처함을 안기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네.

방금 우리에게 우연히 생긴 여하간 본성상 놀라운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네. 사실 여럿이 하나이고 하나가 어렷이라는 것은 놀라운 어급이지. 이 둘 가운데 어느 한 쪽 입장을 제시하는 사람과 논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14b에서 닮지 않은 즐거움과 차이가 있는 여러 지식같의 차이를 논할 것처럼 태세를 취하다가 14c에 와서 논점을 샌다.

14e

유치하고 쉬우며 논의에 몹시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지. 그리고 이런 경우의 문제도 붙들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네. 어떤 사람이 각자의 사지와 부분들을 말로써 나누고 이것들 모두가 저 하나라는 점에 누군가의 동의를 얻어낸 후 하나가 여럿이고 무한하며 여럿이 하나일 뿐이라는 기이한 주장을 그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조소하면서 논박할 경우 말이네

  1. 파르메니데스에서 유사한 문구가 나옴
  2. 플라톤의 구별 : (1) 생성소멸하는 것 – 유치하고 쉬우며 논의에 방해가 되는 영역 (2) 생성소멸하지 않는 것 – 진짜 문제 (15b에서 언급됨)

15a

얘야 방금 우리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가 생성소멸하는 것들에 속하는 하나인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야. 이 경우에 우리가 방금 말한 그러한 하나인 것은 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합의되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누군가가 사람을 하나로, 소를 하나로, 아름다움을 하나로, 그리고 좋음을 하나로 상정하려 할 때 이들 하나인 것들과 이런 유의 것들에 관해서는 그것들의 나눔에 쏟는 대단한 열의가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네.

이데아(사람, 소, 아름다움, 좋음) , 형상 논쟁 (idea, eidos)

15b

  • 첫째로 그와 같은 어떤 일자들이 참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어떤지이네.(1번 문제)

  • 그리고 또한 어떻게 이 일자들 하나하나가  언제나 동일한 것이며 생성도 파멸도 받아들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장 확고하게 하나라고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지이네. (2번 문제)

  • 그 다음으로 각각의 일자가 무수한 생성하는 것들 속에 훝어져 여럿으로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뭣보다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바로 그 것 전체가 그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동시에 하나와 여럿 속에서 하나이며 동일한 것으로 된다고 생각해야 하는지이네 (3번 문제)

1번문제 : 형상, 이데아가 존재하는가의 문제 – 이데아는 시공간에 제약이 없고 따로이 choris 존재하므로 경험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됨 (관념, 사고의 산물)

2번 문제 : “언제나 동일한 것이며 생성도 파멸도 받아들이지 않음” = 이데아를 표현하는 설명

여기에서 왜 역접(불구하고)이 나왔는지 2세기 동안 격렬한 논쟁이 있었음

역자 샘의 해석은 “이데아가 쪼개짐에도 어떻게 하나일 수 있는가”로 문제를 해석하고 이는 유- 종의 문제로 해석함

여기에 삼위일체설 같군요 하는 코멘트가 있었음. ㅋ 매우 공감갔었음. 역시 보지 않고 믿으려면 신앙심이 있어야 함 ㅋ

3번문제 :관여의 문제

이 부분의 구절과 유사한 구절이 파르메니데스에 있음.

형상들은 따로기 있는지? 어떤 형상들이 있는지? 관여하는 각각의 것은 형상의 전체에 관여하는가 아니면 그것의 부분에 관여하는가 ? 하나의 형상 전체가 여러것 각각의 속에 있는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있는가(파르메니데스 131a)

사물과 형상과의 관계(관계표현)를 플라톤은 5가지로 설명해 왔음

parousia : 나타나 있게 됨 (형상이 개별자에)

metheris : 관여 (사물이 형상에 관여)  – 그러나 이해하기 쉽지 않은 논리?

koinonia : 결합 (상호 결합)

mimesis : 본의 모방

aitis :원인

  • 15b를 첫째 질문(형상의 존재), 둘째질문+ 셋째 질문을 합쳐서 관여 이렇게 질문 2개로 이해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있음

15e

하나와 여럿이 진술들에 의해 같은 것으로 되어 예나 지금이나 줄곧 언급되는 각각의 것들과 관련하여 이곳저곳에 나타난다고 말이네.

진술이란 logos : a는 b이다.

같은 것 : 이다 (be)

 

다음 시간에 드디어 변증술의 시작으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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