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은 야한 이름. 필레보스 (정암학당 플라톤 교양강좌)

필레보스

 

오늘 강의 중 전체 책의 개략은 정암학당에서 발간한 필레보스의 해설에 거의 들어가 있으므로 여기에는 전체 개략보다는, 본문을 읽으면서 역자샘과 수강생강의 질문에 따른 답을 정리하는 정도로만

11.c.

필레보스기뻐함, 즐거움, 유쾌함, 그리고 이런 부류에 해당하는 온갖 것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네

– 필레보스의 뜻 : phil(사랑)+ebos(젊음) : 젊음을 사랑하는 자, 그러나 젊은이를 사랑하는 자라는 취지라는 그리스 시대의 맥락상 꽤 에로틱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필레보스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됨(누구의 아들 또는 관계자들이 나타나지 않음), 왜 다른 대화편과 달리 왜 이 대화편만 가상의 인물일까. 추측컨대, 필레보스는 고집쎄고 극단의 쾌락주의자라서 소크라테스가 싫어하는 캐릭터라 굳이 가상의 인물로 내세운게 아닐까. 그 이유는 그냥 우리끼리 추측할 뿐.

-기뻐함, 즐거움, 유쾌함은 다 같은 말 같은데, 아마 플라톤은 즐거움을 모두 포함하고자 이렇게 그리스 시대에 즐거움을 표하는 모든 단어를 다 예시적으로 거론한 것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 : 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인간에 한정되는 듯한 뉘앙스와 달리 인간 + 동물 + 식물 기타등등을 모두 살아 있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즐거움이 좋은 것이다라는 의미는 (1) 즐거움=좋은 것, (2) 즐거움이 좋은 것 중의 하나, (3) 즐거움이 좋은 것 중 최고라는 세가지 의미로 파악될 수 있는데, 원문에서 처음에 필레보스의 의견은 정관사 없이 agathon(좋은 것, 2의 의미)로 쓰였다가 뒤에서는 정관사를 넣어서 to agathon(1의 의미)로 사용됨. 그러나 좀 헷갈리는 것은, 중간에 19c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는 취지의 검토를 위한 자리라는 설명도 나옴.이 부분은 점점 읽으면서 파악해 내기로

하지만 우리 쪽 반론은 그것들이 아니라, 분별함, 인식함, 기억함, 그리고 또한 이런 것들과 동류의 것들인 옳은 판단과 참된 헤아림이런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모든 것에게 즐거움보다 더 좋고 더 바람직한 것들로 된다는 것이네.

-분별함, 인식함, 기억함 : 분별, 인식은 이데아와 맞닿는 앎을 의미하여 유사하게 묶일 수 있으며, 기억은 분별, 인식과는 다른 앎

-옳은 판단과 참된 헤아림 : 옳은 판단과 참된 헤아림은 분별, 인식과는 다르다. 옳은 판단과 참된 헤아림은 어떻게 하다보니 옳은 결론에 가기는 하였으나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며,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분별함과 인식함임

-관여 : 관여는 이데아와 관련되는 것으로 뒤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 ex.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관여함으로써 아름답다. (뭔쑐? ㅋㅋ

-이런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모든 것에게 : 이 때의 개념은 앞에서 본 필레보스의 주체와 달리 “인식, 분별”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 추정된다. 뒤를 살펴보면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더 좋고 더 바람직한 것: 필레보스와 달리 비교급으로 표현하고 있음

그래서 현재나 미래에 이런 것들에 관여할 수 있는 모든 것에게 그러한 관여는 뭣보다도 가장 이롭다는 것이네.

-가장 이롭다는 것 : 앞의 표현과 달리 최상급

우리의 빼어난 필레보스가 논의에서 물러섰으니까요

-이문장은 고집센 필레보스를 계속 대화에 넣으면 말싸움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빼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하였으나, 강의를 듣던 한 샘께서 손을 들고 필레보스와 소크라테스의 즐거움에 대한 정의가 다른데, 필레보스의 즐거움에 대한 정의가 오히려 더 빼어나고 현대적이라서 소크라테스의 논리가 일관성을 잃을 수 있거나 밀리니까 이렇게 필레보스를 일부러 뺀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음. 이 점은 뒤를 점점 읽어가면서 살펴보기로 하였음 ㅋㅋㅋ 그렇지 않아도 12e에 필레보스의 주장의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나쁘지 않은 듯

12a

그런데 다른 어떤 상태가 이들보다 더 좋은 것으로 그러나면 어떠하겠는가

-소크라테스가 좋은 것에는 분별, 즐거움 이외의 제3의 존재도 있음을 열어놓는 대화를 던짐

저는 어떤 경우에도 즐거움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고, 장차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필레보스의 고집을 드러내는 문장

12. c.-d.

나는 즐거움이 다양한 것임을 아네 —(중략) 우리는 방탕한 사람이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네. 또한 어리석은 판단과 기대들을 잔뜩 갖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도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는가 하면 분별있는 사람도 바로 그 분별함에서 즐거움을 누린다고 말하네. 누군가가 이러한 양쪽의 즐거움들이 서로 닮았다고 말한다면 그가 어리석은 자로 보이는게 어찌 당연하지 않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즐거움의 개념적으로 불분명함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이러한 즐거움의 다양성설명을 시도한다. 그러나 강의를 듣던 한 샘께서 오히려 이런 다양화된 즐거움 개념이 오늘날 심리학적으로, 뇌과학적으로 바른 것으로 입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함 (필레보스 지지자 ?)

12. e.

사실 그 즐거움들은 상반된 것들에서 생깁니다만, 적어도 그것들 자체는 서로 상반된 것들이 아닙니다. 어찌 즐거움이 즐거움과, 바로 그것이 그 자신과 뭣보다도 가장 닮은 게 아닐 수 있겠습니까.

프로타르코스는 즐거움의 개념을 하나로 정립할 수 있다라고 정리함. 필레보스의 주장의 요약임

 

오늘 강의는 전반적으로 … 후반부 책 본문강의에 들어가서 객석에서 대화 및 궁금증이 많아서 꽤 잼났다. 역시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현대에 있어서 그대로 막 써먹을 수는 없으나 그 논리와 궁금증을 따라가는 과정은 꽤 잼났다. 고대시대 베스트셀러에서 제기한 의문을 제기하자, 각자 상상력과 현대세계에서 의문나는 것들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꽤 좋았다.

즐거움과 분별이 따로 갈 수 없으니… 결국 플라톤도 우주론으로 빠진 것아니겠는가? 암튼 점점 공부하면서 나도 우주의 신비(?)를 차차 느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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