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은 어떻게 책이 되어 우리에게 왔을까?

2015. 11. 21. 김진성 샘 “서양 고전의 전승과 필사본의 세계”강의록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원저자의 글이 현재 모두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니라 필사본들이 종합하여 정리되어 천년이 지나 우리에게 남은 것이다. 플라톤의 필사본은 약 250여개, 아리스토텔레스는 약 이천여개 정도 남아 있다.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 일부 남은 파피루스 두루마리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는 파피루스의 생산에 대한 언급이 존재

형이상학에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bibl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나중에 이는 성경의 바이블의 어원이 되기도 함. Cf. 책은 liber를 어원으로 함

파피루스상의 글들은 오늘날과 달리 대문자로 되어 있음.ex. 호메로스 일리아스
아리스토텔레스가 170여개의 정치체계를 수집한 “아테네인들의 정치체제”는 1세기 파피루스 롤 필사본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 ; 이 문헌의 독특함은 원래 파피루스는 앞면만 사용하는데 뒷면을 이면지로 필사한 것.
파피루스는 주로 그리스어문헌이 많고 라틴어 문헌은 거의 없다.
이집트가 파피루스 최대 생산지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최고 수준의 당대 도서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데메트리오스가 프톨레마이오스1세에게 건립할 것을 조언하여 무새이온 건립 (무사여인들의 집) ; 나중에 museum 의 어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피루스 놓는 선반을 bibliothek 이라 부르며 이 선반에는 the place of the cure of soul이라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고 함

이 도서관은 화재로 불타없어졌다고 하나 이는 과장된 것. 학자들에 대한 처우가 좋아지지 않자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갔고 이 과정에서 필사본은 사방팔방으로 좋은 조건을 찾아 흩어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사실상 해체된 것임(필사본들의 유람시기 ㅋㅋㅋ)
아이스토텔레스의 필사본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발견됨 : 아프가니스탄의 아이카눔의 학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론에 대한 대화편 파피루스 일부 발굴됨(기원전 2세기)

 
Papyrus codex(파피루스 책) : 파피루스를 접어서 책으로 만들기도 했음

성경도 그런 형식으로남아있음

양피지

 
4세기가 되자 파피루스 외부수출을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동물가죽을 이용한 양피지가 대중화하기 시작함. 짐승가죽을 틀에 잡아당겨서 만듬.

한마리 죽여서 몇 페이지 안 나오지만 파피루스보다 견고하고 편리한 점이 어필됨.(16장 기준 ㅡ 오늘날까지 책편집에 영향을 줌)

양피지가 발전하면서 부유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책 내용을 한장으로 요약한 그림을 책 한 페이지에 채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 유행 ex.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패트라르카의 승리, 아리스토텔래스의 니코마코흐 윤리학
필사본은 비싸서 썼던 것을 지워서 재활용하는데 오늘날은 지워진 흔적을 적외선으로 추적할 수 있음.

양피지에 적혀 있던 이교도 문서의 내용을지우고 성경으로 재활용한 경우(palimpsest팔림프세스트)가 있는데 이교도 문서를 이제는 적외선으로 볼 수 있음.
이미 중국에서는 종이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아랍에는 중국포로로 인하여 751년에 전파되고, 서구에는 11-12세기보편화됨 . 초창기 출판업자는 종이에 무늬 (워터마크 )를 넣어 오늘날 이 무늬를 통해서 책 출판연대를 가늠할수 있음

그리고 구텐베르그의 인쇄혁명으로 책의 대량 보급화

그렇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

플라톤

이렇게 책이 전승되어 오는 과정에서 플라톤은 필사본의 전통이 탄탄하고 정형화되어 있어서 필사본이 250여종밖에 되지 않음 ( 트라싈로스의 편집)

스테파누스 플라톤 전집

스테파누스 는 플라톤 전집의 책을 나누지 않아 두껍게 만듬

 
아리스토텔레스

그에 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필사본은 총 2000여개에 이르는등 중구난방.

1965년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책편집을 시작했으나 아직도 끝나지 않음.
이런 상황에서는 텍스트를 선별하는 것 자체가 ㅡ.ㅡ 독일에서 필사본들을 모두 모아서 분류를 하고 대조를 해가면서 선별하는 작업을 제일 잘함.
아리스토텔레스의 편집본은 베커님 것이 최고임. 베커는 과묵한 자로 7개 국어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불렸다.
베커쪽수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기본이 됨.
이후 로스, 애거가 이러한 연구를 계속 해옴
카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설필사본의 계보에 대하여 연구하였는데, 아래스토텔레스가 직접 작성한 원본이 없으므로 시기별 추적으로 계보도를 그려내고 서류영향받음을 설명해줌.
1741년판 연설술 필사본: recto 앞면 verso 뒷면 (cf. verso 출판사)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설술 1권 9장의 필사본이 내용이 완전히 정반대인 것들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있어 편집본에서는 하나의 결론을 선택후 다른 텍스트와 비교하는 것을 각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를 criticus apparatus 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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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일본의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상황
일본은 이미 아리그토텔레스 전집을 일본 이와나비 출판사가 출간함.2013년 두번째 전집 내면서 용어가 많이 바뀜
일본은 서구수용속도가 빠름; 1년이내에 대부분의 책이 번역되고, 적어도 책 내용을 요약한 서평이 나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질은 잘 모르겠으나 양은 일본의 번역서가 훨씬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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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빵꾸나거나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텍스트를 메꾸어야 하는 역할을 하는 것 중의 아랍본임. 아리스토텔레스의 필사본 중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넘어오기도 하여 아랍어를 할 줄 아는 학자들이 현재 필사본을 보완하는 역할에 기여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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