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ㅡ 멜레토스 반박 ㅡ 제3강 ㅡ정암학당 ㅡ 강철웅 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다음과 같은 링구성으로 되어 있음

ㅡ 서두 ㅡ 신탁논박 ㅡ 멜레토스 논박 ㅡ 여담 ㅡ 에필로그
아마도 저자는 멜레토스 논박을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여 가운데에 배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겠으나 강샘 입장에선 플라톤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신탁논박과 여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이유
신탁논박을 펼치고 있는 22a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여정을 헤라클레스의 노역에 빗대서 하고 있고 여담에서는 일리아드 이야기를 계속 인용하면서 아킬레우스에 비교하는 등, 소크라테스를 신화적인 인물과 비교하면서 테스트 (Elenchos)를 하고 있음 ㅡ 가상적 질문까지 동원함. 즉, 앎의 수준을 질문을 통해서 시험해보는 것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은 일관성 테스트를 계속 하고 있는데 서로 앞뒤로 안 맞거나 모순될 때에는 안 맞는 것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논리구성이 되어 있음. 미움을 받는데도 계속 테스트를 하는 소크라테스의 태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일반 소피스트들간의 차이를 보여주려 하는데, 사실 이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구름’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로 묘사됨. 사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님.
그러나 플라톤은 그 차이를 만들고 싶어하고 그 차이점을 소크라테스를 영혼의 의사로 이해한 것 같음(이 부분은 주관적 해석임).의사는 대중연설을 통해서 치료할 수없이 때문에 1-1로 대화를 해야 하는것.  논박 중 하나가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자신이 믿는 것 그대로를 이야기해야 함. 상대방이 자기 믿음을 그대로 끄집어 내줘야 그것을 검토하고 제거할 수 있음 ㅡ 그런 모습이 잘 나오는 작품이 고르기아스임 ㅡ 물론 다른 작품에도 그런 모습들이 군데군데 나옴 ㅡ 실제로 고르기아스 자체가 의사 이야기가 나옴
소크라테스나 소피스트나 똑같이 이기려고 하는 것은 동일하나 그 이유가 다른점이 있음. 소피스트들은 이기려고 나 잘났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이나 소크라테스는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즉, 상대방의 영혼의 상태, 믿음들이 일관되어야 하고 믿음들이 조화로워야 한다고 믿음. 왜냐하면 믿음에서 행위가 나오기 때문임. 그리고 그 조화를 찾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서피스트등의 차이임
조화를 알고 모순을 발견해 내는 것 ㅡ 그것을 잘 잡아내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능력 ㅡ 소크라테스는 1차 수준의 앎은 모르지만 2차 수준의 앎은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플라톤은 해석하고 있음.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대화하는 사람들은 늘 평소의 소신이 풀어지고 해체되는 경험을 함.
아마도 철학자는 지혜로움을 찾은 자가 아니라 찾는 자인데 플라톤은 찾은 자(현자)로 이해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구별점일 듯. 계속 길 위에 있으니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수도 있으나 그게 인생의 묘미. 과정도 도이고 결과도 도이다
*멜레토스 반박 나용 정리
ㅡ 24b에서 고발내용 정리
ㅡ 24b전까지는 실제 이루어진 고발을 반박하지 않고 가정적 반박문이 이루어짐 ㅡ 가정적 비난의 내용의 요지는 소크라테스가 받은 아폴로 신탁과 했던 일에 대한 비난,질투 등이 없음.
– 실제 이루어진 고발 내용
젊은이를 믿는다는 것 하나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는 것 하나
– 역사적인 고발내용의 순서를 바꾸었음 ㅡ원래 고발은 신에 대한 것이 먼저였으나 플라톤은 그 순서를 바꿈
– 첫번째 고발내용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 요지 : 멜레토스는 내가 젊은이를 망친다고 하는데 자신은 젊은이들의 교육에 관심도 갖지 않는 문제라고 반박함
“진지하게 장난한다 ㅡ 진지하게 농담한다” – 진지함과 장난
진지한 추구와 놀이
Spoude /paidia 놀이 ㅡ paideia 교육
놀이하고 교육은 같이 간다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진지하지 않게 농담하지만 자신은 진지하게 농담함을 멜레토스 이름을 가지고 장난함으로써 보여줌 ㅡ 소크라테스는 향연에서도 비극과 희극은 같이 가야함을 설명함
-네가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하는지 관심이 있는지 보자고 대화를 시작
소: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게 뭔가
멜:법률
소:그런 추상적이거나 말고
멜:배심원
소:배심원 전부냐 일부나
멜:전부
소:헤라신을 걸고 맹세
멜:평의회 &민회 참석자들(2,30000)
소:아테나 성인 남자 다야? 나만 빼놓고?
소:말의 비유 ㅡ 말을 누가 훌륭하게 교육할 수 있는가, 소수이냐 다수냐
말을 훌륭하게 만드는데도 소수밖에 안되는데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더 소수가 아니겠는가. 말 비유때 멜레토스가 대답을 안함(대답을 해야 하는 시츄에이션인에 말을 안하는 것으로 봐서 말문이 막힌 상황임)
소:관심없는 이야기를 하니까 이렇게 이상한 말를 하는게 아닌가
제우스에 대한 맹세
사실 이 변론은 ad hominem (인신공격)의 오류임
하지만 논리학작 오류를 차치하고 소크라테스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상대방을 케어하는 의사적 입장에 있다고 한다면 … 상대방의 상대가 조화롭지 않다면 바꿔주고 싶다면 그것은 사람을 상대로 할 수 밖에 없음.
하지만 치료받는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것 ㅡ 누가 나를 치유해 달라고 했음?, 기분 나쁨
26a ㅡ 딜레마 논쟁 -젊은이들을 의도적으로 망치는 건가?
내가 의도적으로 망치거나 : 그렇다면 내가 해를 입을 텐데 의도적으로 했다는 것인가?
의도가 없이 망치거나 :재판정에 올 문제가 아니라 나를 잘 선도할 문제임
양 쪽으로 나누고 둘 다 아니다로 가는 것 ㅡ 딜레마 논법
소트라테스는 멜레토스의 반박 부분에서 말장난으로 유희적으로 접근함
Meletos 는 melein관심 갖는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
말장난은 , 멜레토스의 이름은 관심자인데 관심도 안갖는다라고 인신공격소크라테스 자체가 진지하게 농담하고 있음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차이점
소피스트는 영혼의 치유에 관심이 없음(플라톤 버전) ㅡ 실제를 알 수 없음
ㅡ 특정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에 대하여 검토를 하는 것에 관심
ㅡ 네가 어떤 입장에서 송사를 하느냐가 관심 ㅡ 사실에 무관심
Passophos ㅡ 소피스트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 ㅡ 변론서를작성하거나 대중연설을 하거나, 하지만 소피스트들은 그들의 신념을 믿지 않고 타인이 원하는 바를 따름.
영혼을 돌보는 것이 정치학이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짝퉁기술들이요 아첨임
소피스트들은 이 사람들의 삶이 훌륭질까가 아니라 관심이 있을 까 하는 생각만. 하지만 오히려 민주주의 정신은 소피스트 전통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부분이 많을 수 있음. 플라톤에 대해 소피스트적 입장까지 포함하여 이해한 오픈 플라톤주의적 자세도 있음(강샘 입장)
#신을 믿지 않음을 반박한 부분
ㅡ 멜레토스가 무신론을 고발한 이유 : 신에 대한 잘못된 교육으로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어서 고발함 : 즉 무신론 고발도 젊은이를 망치는 것에 대한 첫번째 고발과 연결됨
– 대화진행
소: 고발내용이 신을 안 믿는다는 것이나 국가가 믿는 신을 안믿는다는 것이냐
멜 : 무신론
소: 내가 해와 달이 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냐. 아낙사고라스와 제우스를 다시끌어드림
소는 직접적으로 내가 신을 믿는다라고 논증하지 않고 헤라 제우스에게 맹세함을 언급하여 신을 믿음을 입증.
제우스를 끌어들이면서 맹세하는 것은 관용적 표현인데 이를 3번식이나 사용하여 무신론자라는 반론을 퍼포먼스로 보여줌.
P. 76

당신은 정말 믿을 수 없네요 멜레토스 내가 보기에 당신 자신도 물론 당신을 믿을 수 업을 거고요

ㅡ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와의 차이 ㅡ 소크라테스는 믿고 말함 : 플라톤이 일부러 넣은 구절

소피스트는 남이 믿고 싶어하는것을 선택해서 말함 ㅡ 자기 설득과정이 없음 : 멜레토스는 자기도 믿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

Pragmata – 인간에게 속한 일

신령.  다이몬의 신령 자신이거나 신의 자식

다이몬이 뭐냐?

ㅡ 시대마다 생각이 다름

그것들을 정리하면 , 신 또는 신의 자식

노새의 논변 ㅡ 신의 자식이 있다면 신이 있다고 믿는 것임

일관되지 않은 상대방의 믿음 상태를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함

직설법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지 않고 대화법으로 돌려돌려 복잡하게 간 이유는 ?

ㅡ 대중상대로 한 대화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아님

ㅡ 마지막 대중교육의 장을 이런 방식으로 이용함

ㅡ 잠정적 진실을 추구하는 회의주의자

# 회의주의 설명

소크라테스 사후 6-70년후에 아카데미는 기원전 347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물먹고 소크라테스 조카가 물려받고 기원전 273년즘 아카데미가 완전히 바뀜 . 플라톤 사후 2세기가 흐른뒤, 플라톤은 도그마를 가졌던 사람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아카데미가 바뀜ㅡ 이데아 조차도

아카데미가 자꾸 묻기만하고 자기 이야기를 안함 , 묻는 소크라테스

플라톤도 그런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치에 있다는 회의주의

이데아론도 잠정적인 생각으로 생각해왔다라는 입장이 대두됨

플라톤도 그렇게 이해하려는 입장이 대두됨
회의주의라는 게 ㅡ skeptomai 숙고한다, 생각해본다, 아직 결론이 안났어 ㅡ 회의주의

Epoche -판단중지

대화편들에서 소크라테스가 그런 정신에 입각해 있다고 생각됨

회의주의는 오해하면 안되는데 ㅡ 근대 데카르트 등의 철학자들에게 도전된 회의주의는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아카데미의 회의주의가 아님

회의주의는 알 수 없다라는 것도 아직 판단하면 안됨 ㅡ 네거티브 도그마틱 ㅡ 우리가 아닌 회의주의는 그냥 부정적 방식의 도그마틱임

Pyrrhon식 회의주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님

즉, 도그마를 인정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태도에 어울리지 않음

그렇다면 제일 흥미로운 질문 : 회의주의자는 어떻게 교육을 할까

Unknowing ㅡ회의주의는 태도와 잘 어울리고 있음, 앎의 기준이 높음

즉, 이러한 회의주의, 확고한 가치관을 제거하고 따져보는 것 기존체계에 전복적,위험한 사상, 이게 철학이 해야 할 일.

크리톤에서 가장 극명하게 이 따져봄, 회의주의가 나타남. 죽기 전날 탈옥하자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가 따져보자고 함.

적에게는 위험하고 내편에게는 답답한 것일수도.

근본적인 규범에서 따져 보아야 함

철학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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