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ㅡ 정암학당 ㅡ 제2차 강의

모른다는 걸 안다는 게 왜 중요한가 또는 왜 대단할까

 

 

이에 수강생들의 생각들

: 개선가능성?

: 사람을 도발하는 주제

: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선택되었다 ㅡ 계몽주의 ?

강샘

사실 이렇게 문제제기하는 것은 듣는 사람들이 기분 나쁘다고 느낄 정도의 도발적 질문임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기소된 사유와 달리 왜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을 도발적으로 쟁점과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 이 지점은 법정에서 쟁점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크시노폰의 변명과 다르다. 왜 플라톤은 크시노폰과 다른 나는 모르는 것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는 말로 도발한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른다는 걸 안다가 누구나 하듯 나 그거 몰라 이런 의미일까. 우리가 아무리 모든 것을 알아도 모르는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모르는것을 안다는 게 대단한 걸까. 그렇다면 포인트는 이렇게 액면 그대로의 안다는 의미가 아닐지도.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는 진실과 진리라는 말이 많이 나옴

우리나라에서는 진실과 진리가 완전히 다른 뉘앙스이지만 희랍에선 진실과 진리가 같은 단어

희랍에서 진리란 검증가능하고 확인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가감없이 이야기 하는 것. 진리의 의미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켕기는 사람은 빼고 보태는 것이 필요한데 거리낄게 없으니 꾸미지 않고 말한다 & 가감없이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말한다는 맥락과 근접함.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Unknowing,즉 자신의 신념과는 것들도 모두 비워내는 것을 의미하지만 생각만큼 비워내고 쳐내는 것이 쉽지 않다. 비워낸 상황이 전제.

델피의 신탁 얘기 자체가 사실인가 ㅡ 크세노폰의 변명에도 소크라테스의 신탁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이는 사실같다. 하지만 이성적인 소크라테스가 종교적 신탁을 철학적 작업 또는 미션을 시작으로 설명하는 것은 뭔가 모순되는 것 아닌가

다시 무지의 지로 돌아가보자. 소크라테스가 무지하다고 할 때는 참된 믿음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님. ㅡ 인식론에서는 참된 믿음과 앎을 구별

소크라테스는 참된 믿음과 앎을 구별하고 있음. 소크라테스는 참된 믿음은 있으나 앎은 모린다는 의미. 앎은 신이나 되거나 죽어서 사람을 넘어서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 즉 소크라테스에게 앎의 경지는 높은 것

소크라테스는 인식론적 반성을 한 자 ㅡ 나는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인식론적 반성을 가졌는가라는 것이고 이만큼 무지의 지가 생각만큼 간단하지는 않음

소크라테스가 델파이 신탁에서 나는 철학해야 하는 미션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해석은 견광부회적 요소가 있음. 하느님의 말씀을 함부로 해석한다

소크라테스는 델피의 신탁에서 철학하기를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철학을 하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소크라테스의 일은 철학자는 자신과 남을 검토하는 일이고 이는 괴롭히는 일 ㅋㅋㅋ

그렇다면 철학하는게 무엇인가

지혜를 사랑하다 ㅡ 철학하다 ㅡ 책 인덱스를 볼 것

플라톤의 의도 ㅡ paradeigma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교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하나의 선택지로 보여주려고 한 것 ㅡ 소크라테스 처럼 ㅡ 안다는 것을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 즉, 소크라테스라는 역사적 인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주목하라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덧붙여진 것 뿐 ㅡ 인간의 지혜가 하찮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

지혜 ㅡ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지점 ㅡ 수단

지혜에 도달하려는 노력 ㅡ 사랑 ㅡ 동인 ㅡ 무지의 지 ㅡ 목표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사실은 지혜가 수단이고 삶자체 ㅡ 앎을 향해 가려는 것 ㅡ 훌륭하고 중요한 것 : 신적인 의미에서의 훌륭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숙명과 한계내에서의 삶 ㅡ 삶의 태도 ㅡ 끊임없는 반성과 즐거운 삶

과정이 수단이 아니라 목표임 ㅡ 어떻게 사는 게 중요 한 덧 ㅡ 삶의 과정

향연을 읽으면서 불만을 가진다는 게 인간의 특권이라는 점이 그 책의 주제라고 생각함

V 신은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인간은 불완전… 뭐 그렇긴 하지만 만족스러워 지려고 노력하는 것 ㅡ 그것이 인간의 특권이자 철학

안 가진자의 사랑할 수 있는 특권

향연의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함

동물은 목표가 없고 인간은 쾌노만으로 움직이지 않음

불만을 갖고 개선하려고 하고 추구하려고 하고 ㅡ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한 것이고 철학임

참된 믿음 ㅡ 용기 ㅡ 알아야 상대방이 틀린 것을 검토할 수 있음 ㅡ 이것은 앎이 아니고 참된 믿음일 뿐. 안다는 것? 정의를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원리를 설명할 수 있어야 앎이다ㅡ 외워서 되뇌이던 것은 앎이 아님 ㅡ 다른 믿음과 모순되는 안 됨

젊은이들 일반이 소크라테스를 따라하며 모름을 논박하려 한 것이 아테네에 유행이 됨 ㅡ 어른들이 보기 싫었을 것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는 정치에 참여해서 봉사하지 않고 왜 사적 대화만 해서 괴롭혔을까 ㅡ 이 부분은 이 책 여담에 가상 질문의 답변으로 나타남.

ㅡ 아테네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소크라테스는 참 반공동체적임

페리클레스의 기준으로 보면 소크라테스는 죽일 놈 :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음. 물론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전쟁에 3번 참여한 정도로 시민의 의무를 한 비 있으나 민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배심원으로 참여하지도 않고 가정도 돌보지 않는 등 시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

ㅡ당대인들의 시각으로는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해를 주는 자였을지도

ㅡ아테네 공동체가 배심원제는 추첨으로 한 것은 뇌물이 먹히지 않도록 한 것이었고 그러한 배심원제에서 유죄가 나온 것은 소크라테스가 그만큼 반정치적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음

아주 중대한 단점: 소크라테스는 타인의 개인적인 삶을 돌봄에 신경을 썼으나 폴리스의 공동체적 삶에선  하자가 있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쩌면 민주주의가 다수독재의 요소가 있어서 플라톤의 그걸 공격하고 싶어했을지도

이책에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두 명이 핵심인물들임 ㅡ 이름은 언급되지 않으나 내용이 언급됨 ㅡ 아키비아데스등 .

소크라테스의 변명에는 종교적인 맥락이 나타남

왜 양심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양심에도 종교적 맥락이 있지만 굳이 양심이라고 하지 않고 다이몬의 끌어들인 것은 꽤 신비주의적이며 종교적임

소크라테스는 논리적이지만 미션의 시작을 신비적으로 신에게 의탁함 ㅡ

우리에게는 좀 낯선 논리

신을 끌어들이고 영의 목소리를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기에 내 삶에 과감히 해석함.

22a 내가 미움을 사고 있는 걸 깨닫고 고통스럽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이 신의 일을 가장 소중히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이디푸스로  대변되는 신학적 인간 , 합리적 인간이라면 자기를 파멸시킬 일이라면 계속하면 안되는데 오이디푸스는 계속 감

그리스 비극 서사시에 나오는 인물과 매치

앎이 나의 삶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계속 상대방과 나를 검토함 : 초합리적 철학자는 태도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아이러니

  1. 신탁 ㅡ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제일 현명
  2. 산은 거짓말하기 없음
  3. 그런대 소크라테스는 모른다고 말하고 다님

신탁은  지시문이나 소크라테스는 명령문으로 해석

귀납추론

정치가는 형편없음

시인은 알지는 못하나 말이되는 소리를 함

장인은 쓸모가 있으나 모든 것을 알지 못함

비난의 포인트는 그 사회의 권력그룹들

철학자의 아레테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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