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좀비 프로젝트

신문과 방송에 기고함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쿠쿠루쿠쿠 팔로마라는 노래를 배경으로 보여지던 이구아수 폭포는 살면서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내 인생의 그 곳이었다. 낙하직전까지 유유히 드넓은 대지를 여유롭게 여행해 와 우콰콰콰 호쾌하게 떨어져 끝도 보이지 않던 그 곳. 운이 좋게도 기회가 왔다. 바로 남미의 한 국가에 회의로 가게 되었는데, 무려 삼 일간이나 자유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버스로 가는 데만 23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지만 한국에서 사전에 버스를 예약하고 빡빡하게 일정을 조율한다면 눈도장은 찍고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 그 나라의 버스 예약을 하면서 익숙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 …

버스 예약의 첫 페이지는 나의 온갖 상세한 개인정보들, 처녀냐, 결혼했냐, 과부냐, 이혼했냐 등등의 시시콜콜한, 만약 한국에서 물어보면 버럭 화를 낼 법한 질문들을 해댔다. 물론 평소라면 안하고 말았겠지만, 비둘기 노래랑 같이 들을 이구아수를 가겠다는 일념으로, 모두 곱게 표기한 이후에 클릭하였다. 하지만, 몇 페이지 뒤에서 그 나라 내국인 입증번호가 없어서 예약불가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이런 인권침해적인 절차라니 싶기도 했지만, 평소 신념과 달리 내 개인정보를 주겠다는데도 내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약 자체를 거절당하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참 익숙한 그 포맷 덕분에 우리나라의 그 인터넷 실명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나라 인터넷 실명제 도입경위를 따져보면 우리가 이 제도에 이렇게 적응하게 된 것이 이상할 정도로 이 제도의 시작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것일까.

우리나라의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것은 2004. 3. 12. 법률 제7189호로 개정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직선거법”)”에 의한 것이었다. 이 공직선거법 제82조의 6 인터넷언론사 게시판 대화방 등의 실명확인조항은, “① 인터넷 언론사는 당해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 ‧ 대화방 등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의견게시를 하고자 하는 자가 기입하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의 일치여부를 확인한 후 일치하는 경우에 한하여 의견게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②③④ 생략 ⑤ 인터넷언론사는 당해 인터넷사이트의 게시판 ‧ 대화방 등에 의견게시자가 허무인 또는 타인의 명의를 이용한 것이 확인된 때에는 즉시 그 허무인 또는 타인 명의의 아이디 (이용자 식별부호를 말한다)로는 의견게시를 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하며, 그 아이디로 게시된 의견을 삭제하여야 한다”로 규정하여 성명과 주민등록번호가 일치하는 경우에만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남길 수 있고,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 언론사가 기술적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만약 허무인이나 타인 명의 아이디로 선거에 대한 글을 작성한 경우에는 그 아이디로 게시된 의견을 삭제하는 규정을 두었다. 위 규정의 입법목적은 공식적으로는 선거기간 중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서 흑색선전이나 부당한 선거운동 등을 방지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인터넷 포비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즉, 2002년 대선이 ‘인터넷 선거’로 지칭될 정도로 정치권이 인터넷의 위력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이 선거당락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한 정치권은 2004년 4 ‧ 15 총선이 실시되기 이전에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선거게시판 실명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된 선거 게시판 실명제가 곧 일반적인 인터넷 게시판에도 적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의 공정성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던 선거게시판 실명제는 곧 여러 인터넷상의 모든 악플들을 해결해 줄 구세주로 찬양받으며 입법화되게 된다. 2007. 1. 26. 법률 제8289호로 일부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률 제44조의 5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확인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게시판을 설치 ‧ 운영하려는 경우에는 그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을 위한 방법 및 절차의 마련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생략) 2.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로서 제공하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유형별 일일평균 이용자수 10만명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자”로 규정하여 인터넷 실명제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가 본격화되면 입법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부작용들은 인터넷의 본질적인 TCP/IP 프로토콜 위에 누가 글을 작성하는지 정확히 알아내기 위하여 여러 인위적인, 그러나 충분히 우회가능하므로 불필요한 원시적 수준의 기술적 조치들이 덧붙여서 나타난 것이었다. 즉, 그 우회가능한 기술적 조치는 TCP/IP 보다 더 추적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TCP/IP가 요구하지 않는 개인정보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중요 프로토콜 중 하나인 TCP/IP 프로토콜은 일반적으로 추적가능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물론 TCP/IP 프로토콜을 우회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TCP/IP를 우회하는 것을 마음 먹고 쉽게 해 내는 자라면, TCP/IP프로토콜 위에 깔린 여러 기술적 조치를 우회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입법자들은, 누가 글을 썼는지 찾아내겠다면서 여러 가지 개인정보들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그 중요 기술적 장치 중의 하나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고자 하는 자는, 반대급부로 자신의 개인정보들을 각종 서비스업체들에 제공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재앙의 시작이 되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의 공유재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닫기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 많은 유명 사이트들이 이름도 알 수 없는 중국 해커들에게 털리기 시작했고, 중국의 몇몇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한국 시민들의 개인정보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해외 유명 서비스들, 구글의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처럼 인터넷 실명제 자체가 적용이 안 되는 사이트들이 국내에서 대중화되어 갔다. 즉,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이 대중적으로 이용되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국내 업자들만을 차별하고, 국내 서비스 업체들이 보유하는 국내 시민들의 개인정보는 털리는, 즉 국내업체의 영업권과 국내 시민들의 인권만 침해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많은 수의 시민들은 누군가 내 정보를 이용하여 피싱, 스미싱 등을 하여 신체, 재산에 대하여 위해를 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인터넷 실명제는 그 중요한 주범으로 지적되었다. 결국 인터넷 실명제는 2012. 8. 23. 9인의 만장일치로 위헌판단을 받고 사라지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판단에서 ① 본인확인의 대상인 게시판 이용자는 정보의 게시자 뿐만 아니라 불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없는 정보의 열람자도 포함하고, 본인확인정보의 보유기간이 무기한이어서 침해의 최소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②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므로 그 사전 제한이 정당화하기에는 그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는지가 명백하지 않고, 본인확인 정보 보관으로 인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에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증가되어 법익의 균형성 인정할 수 없어 위헌임을 판단하였다.

인터넷 실명제가 공직선거법에 도입되었을 때부터 이 제도가 우리 시민의 인권을 침해할 것을 경고하면서 무려 10년째 인터넷 실명제 반대운동을 해 왔던 진보네트워크의 장여경 활동가는 그간 몽상가라는 비난을 들어왔음을 한탄했다. 하지만 그녀는 먼 훗날 누군가는 그런 운동들의 의미들을 읽어주리라 믿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 인터네 실명제가 위헌선고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제도의 시작부터 무시당했던 수 많은 경고와 예견들이 실현된 것은, 슬픈 일이지만, 오직 그 경고들이 실현됨으로써 우리는 그 제도를 위헌선언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당연히 인터넷 실명제와 유사한 제도들을 조속히 폐지 또는 조정하였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선고난 뒤 무려 2년이나 세월이 흘렀으나 이번 6. 4. 지방선거는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 실명제 위헌 선고 이후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선미 의원은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단 이후 재빨리 2012. 9. 5. 의안번호 1577 공직선거법상 본인확인제를 폐지한 입법을 발의하였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에 따라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국회에 권고했다. 당시 100개가 넘는 인터넷 언론사, 인터넷 활동 시민단체, 언론사 시민단체들이 모여 제18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시작 전에 인터넷 실명제 폐지법안을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입장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인터넷 실명제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무려 10년간의 역사를 가진 이 제도는 현재까지도 여러 제도들 틈 사이에서 이름만 바꿔서 존재하고 있다. 국회는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 직후의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여당과 정부는 인터넷 실명제를 개선해서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인터넷 실명제의 위헌선언이 발표된 이후 정부는 관계부처와 제도개선 방안 등 후속대책을 논의하면서 “게시판 이용자와 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의식이 약화되어 악성게시물이 증가되고 피해발생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피해구제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면서 여전히 인터넷 실명제와 유사한 후속입법을 제안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여러 제도들에 남아 있던 인터넷 실명제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만 바뀌어 지금까지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수 많은 서비스사업자들이 수집하던 정보를 통신사에게 몰아주는 정보통신망법상 본인확인 지정기관제도 역시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과연 통신사는 안전할까? 도대체 이 판국에 안전한 곳은 어디이며 안전하지 않은 곳은 어디인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최근 개인정보침해에 대한 대책으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휴대전화 본인 확인제를 입법화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전화가입자본인확인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위해 행정정보 공동이용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근거조항까지 신설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인터넷 실명제가 제정될 때와 동일하게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해왔던 진보네트워크를 포함한 소비자단체들이 이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하였으나 인터넷 실명제 도입시와 동일하게 무식한 주장(?)으로 폄하되어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와 그의 친구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름을 바꾸어 살아 남고 있다. 도대체 이 사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첫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결국 남미의 이구아수에서 오고가는 버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나는 무사히 한국에서 버스를 예약하고 왕복 48시간에 걸쳐 쿠쿠루쿠쿠 팔로마 소리를 벗삼아 이구아수를 다녀왔다. 이구아수 폭포는 한 국가가 아니라 3개 국가가 공유하고 있었고, 그 중 한 나라는 내국인 입증용 번호를 포함한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인터넷 역시 그러하다. 거대한 이구아수의 폭포에 가는 버스 타는 방법을 한 나라가 규제하더라도 다른 나라 버스를 타면 되듯이, 인터넷상에서 국내에서의 서비스 사업자들만을 규제한다고 하여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을 최초 설계한 자들은 TCP/IP 프로토콜을 공공재로 공유하여 국경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누구나 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도록 인터넷을 설계하였다. 거대한 인터넷의 세계에서 우리정부와 국회는 우리 국민과 우리 사업자들에게만 반인권적인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은 참으로 부아가 치미는 일이다.

왜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판단 난 지금에 와서도 여야 모두 담합하여 공직선거법상 실명제를 유지하고 있는가. 왜 인터넷 실명제의 아류인 본인확인지정기관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가. 그리고 또 지금에 와서 여야 모두 합의하에 왜 이런 제도들을 확대하려고 하는가.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이해당사자들인 우리 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아마도 이렇게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인터넷 실명제와 그의 친구들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또 한 번 우리에게 십 여년간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운 후 살짝 없어지는 체 할지 모른다. 한 십 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잔존되어 남아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너무나 익숙한 절차와 제도는 우리에게 문제제기하는 것까지 희한한 일이라고 비난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보네트워크의 장여경 활동가가 몽상가라고 비난 받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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