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정보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쪼임을 받아서 급하게 쓴 칼럼

아이디어 도움 :@ehchun, @KeyJKim

———————————————————————————————–

개인정보와 관련된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인정보를 수집한 온라인 기업들이 고객들의 정보에 대한 동의도 받지도 않고 텔레마케팅업체에 판매하거나, 심지어 최근에는 금융기관에 대한 북한의 해킹여부 문제도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들이 서비스와 무관한 이용자들의 불필요한 정보까지 수집하는 경우가 워낙 보편화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이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는 영역이 많아, 한번 기업의 개인정보 문제 이슈가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이해관계자가 되는 세상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온라인 상의 수 많은 서비스들은 고독한 점인 온라인상의 개인들을 그들이 생산해내는 정보들을 통해 연결해 준다. 그리고 그 정보는 우연적인 다수의 참여로 가공, 퍼날라지면서 “유통”의 위험성은 커지고 개인정보관리자의 “통제”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이미 세상에 풀려버린 정보들은,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선의이건 악의이건, 고의이건 과실이건, 최초 발화자를 포함하여 누구의 통제도 불가능한 상태의 인격체로서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마치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온라인상에 퍼진 나와 관련된 정보들은 나의 그림자지만,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는 모습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유독 개인정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원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온라인상에서 본인확인제, 게임셧다운제 등을 통해 실명제가 강제되어 온라인상의 고독한 점들이 현실세계에서 누구인지, 온라인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가 누구로부터 흘러나온 것인지를 매우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네티즌수사대가 활개를 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이용자들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과도하게 저급하기 때문도,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 만들기에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소위 실명제를 통하여 국가가 네티즌수사대의 신상털기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도움으로 궁금해서 보고 싶은 정보들이 쉽게 연결되어 펼쳐져 있는데 이를 막는 것이 무엇으로 가능할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면서도 굳이 에덴동산 한복판에 사과나무를 세워 놓은 알쏭달쏭한 신의 마음일까?

우리의 이런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은,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찾아낼 거야”라는 약간은 로맨틱한 느낌을 주는 위치정보활용과 관련된 서비스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법조계에서는 위치정보를 활용한 첨단수사기법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발 스마트폰 위치정보논란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와중에 전 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위치정보보호법(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더 강화하는 논의가 일부 있는데, 지금까지의 위 법의 적용예들을 통해 보았을 때, 프라이버시 보호보다는 불필요한 규제권한의 강화로만 결론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 위치정보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는, 위치정보가 이동통신사에 의하여 사실상 강제되는 통신실명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통신서비스를 받는 자의 위치정보는 통신회사의 가입자정보와 결합되어 항상 누구인지 특정된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에 의하여 강제되는 통신실명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익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선불폰 등이 소비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대표되는 개인정보들에 대한 국가통제에 매우 익숙한 우리의 현실에서 위치정보의 활용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느끼는 것은 프라이버시의 권리구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 또한, 위치정보 논의와 더불어 우리사회가 선결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소위 “실명제”로 대표되는 국가기관에 의한 사적 공간의 개인정보들에 대한 익명가능통제권을 각 개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넘겨주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지숙 교수(2005년)는 “”네트워크화된 환경에서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투명성, 또는 프라이버시와 효울성 둘 다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얻기 위해 기본적 윤리개념을 재고할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않고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위한 기술적, 사회적 방법 등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면서 “네트워크프라이버시를 정보통제권에서 식별되지 않을 권리”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익명권을 보장하고,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들의 온라인상의 활동에 대한 통제를 거부하는 일을 우리가 원하고 있는가? 이런 익명권을 보장된 세계를 우리가 원하는 것인까? 무엇이 우리의 미래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가치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논의하지 않고, 다만 그때그때 이슈에 개인정보의 문제를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다보면, 결국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보호문제들은 어정쩡한 상태로 유지된 채, 조지오웰의 1984에서 보여주는 국가통제사회의 모습과 유사한 세상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우리가 실명제를 유지하면서 위치정보보호와 관련된 법을 함께 가지고 있는 기이한 모습은 이러한 일관성없는 규제위주의 법제정에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이번 위치정보와 관련된 논란들로 우리 이용자들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Advertisements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