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문화생산자인 청소년의 법적 지위

어제 문산연토론회에서 10분토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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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문화생산자인 청소년의 법적 지위 (토론문)

김보라미 변호사

청소년이라는 의미는 어감상 애매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인격, 그래서 청소년이 아닌 어른들이 그들의 성장을 위해 사회의 어두운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그 무엇인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10대들은 10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이용한 천재적인 작품들을 통해 주도적인 문화생산활동을 하여 왔디. 17세의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에 충격을 받고 제1호 가곡 마왕(슈베르트_리스트_유자 왕_마왕)을 작곡하여 지금까지도 불후의 가곡으로 칭송받는가 하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수 많은 10대 아이돌 가수들, 인터넷 소설분야에서 신기원을 연 귀여니,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을 예술로 승화시킨 김연아같은 청소년들이 우리의 대중문화를 풍요롭게 살찌워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날 사이버 공간이 지배적인 상거래 및 컨텐츠 유통의 채널로 급부상하면서 청소년들의 적극적 문화형성활동 역시 더욱 쉽고도 다양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변화속에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확실히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은, 실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법리적으로도 복잡할 수 밖에 없는 과잉 감정일 수도 있다. 오늘날의 대중문화를 형성, 발전시키는데 큰 축을 담당하는 청소년들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스티븐 킹이 죽음의 무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히려 “자식들의 정서와 상상력에 강도행위를 해야 한다는 애매한 계몽 의식에 젖어 있는 어른들”의 시각일 수도 있다.

청소년들이 국가로부터의 보호객체로 인정된 것은 19세기에나 들어와서이며, 기본권주체성을 인정한 것 은 아주 최근인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도청소년의 관점에서 그들의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9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이러 역사적인 관점을 고려한다면, 청소년보호와 관련된 많은 법들은, 실제 청소년을 위한 기본권보장의 측면보다는 여전히 성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청소년보호를 위하여 유해매체물 등의 유통을 제한하여야 한다는 규제의 배경이 되었던 많은 이론들은 대부분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성숙한 인격형성을 위하여 청소년 보호”를 청소년 기본권인정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성숙, 성숙의 개념을 연령으로 제한한다는 것 자체가, 개개인의 인격적 성숙의 차이가 있는 현실에서 비합리적인 측면이 매우 크다. (물론 우리 헌법재판소는 청소년을 연령으로 구별하여 차별하는 것을 입법재량사유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합리적인 측면을 고려한뎌면, 청소년의 기본권제한은 표현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되어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와 연결되는 영역에서는 더욱 더 엄격하게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이 접할 수 있는 컨텐츠를 국가기관이 정하는 것은, 최근의 교과서 수정문제에서 거론되었던 것처럼 국가기관의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까지도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청소년보호와는 다른 법률적 쟁점의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다양한 유통매체에 대한 접근들에 대하여, 오히려 청소년의 기본권을 확대하는 이론들과, 청소년보호라는 이유 이외에 좀더 합리적인 측면에서의 기본권제한 사유에 대한 규제이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기이다.

청소년보호규제들은 청소년을 성인이 만든 컨텐츠만을 소비하는 대상으로 이해하여, 성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자유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사회혁신에 장해가 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 수십 년전 미풍양속을 해치는 음란물이 지금은 청소년유해매체물조차 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시대 문명의 발전이야말로 문화컨텐츠 산업의 발전과 청소년의 인격권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 유일한 키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시점의 청소년보호규제들이 애매한 “청소년보호”라는 미명만으로 규제당국의 규제 및 관할욕심으로 청소년들의 기본권이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국가의 산업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청소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문명과 문화의 발전이 해결해야 하는 것을 법의 역할로 떠넘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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